내게 힘이 되는 한 권의 책
한낮의 따가운 햇살에 물기가 걷히고 아침 저녁이 좀 선선해졌다. 책읽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식을 넓히고 지혜를 담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익히는 일이다. 말하자면 나와 타인이 화합하고 유쾌하게 동반할 수 있는 인생의 길을 책에서 깨닫고 배운다. 그래서 가을만 되면 책을 읽자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금언들이 쏟아지는 것일 게다.
올 가을에는 국가 청소년 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우리 청소년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찾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청소년기에 읽은 한 권의 책이 삶의 고비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될 때가 있다. 시험이라는 상대 평가에 찌들어 있는 우리 청소년들이 이번 기회에 그런 소중한 자산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는 무엇에 홀린 듯이 아무 책이나 손에 닿는 대로 읽었다. 대학생인 언니가 읽다가 덮어 둔 연애소설을 몰래 읽으며 가슴을 두근거리기도 하고 고등학생인 오빠가 읽던 무협지를 가로채 읽다가 쥐어박히기도 많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서재에서 카네기의 ‘인생의 길은 열리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아직 인성이 확립되지 않았지만 그만큼 감성은 예민한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책 제목에 호기심이 끌려 첫 장을 열었다가 끝까지 읽었다.
책뚜껑을 덮은 다음에도 책꽂이에 꽂지 못하고 한참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다. 초점이 잡히지 않은 시선으로 한참을 서 있었다. 새벽이 무채색의 세계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무엇에 그렇게 감동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때까지 읽었던 소설이나 시집 등에서 받은 느낌과는 사뭇 다른 것. 뭔가 감정의 블랙홀 같은 것이 나를 끝없이 끌고 갔다.
그 가운데 잊지 못하는 구절은 ‘톱밥을 켜지 않도록 하라’이다. 지나가 버린 일을 가지고 마음을 괴롭힌다는 것은 톱밥을 톱으로 켜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실수와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망각한 후 새로운 계획에 몰입함으로써 그것을 성취한다는 뜻으로 고비마다 내게 힘이 되어 주었다. 지금은 포기하는 용기와 희망하는 에너지를 나에게 안겨 준다.
복잡하고 곤혹스러웠던 하루를 마감하면서 또 한 번 생각한다. ‘톱밥은 톱으로 썰 수 없다.’
-이종화(진해기적의 도서관)
경남신문 2006년 9월14일(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