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풀꽃 밭에서 - 이종화(진해기적의도서관장)

우리 도서관에 작은 풀꽃 화단이 있다. 현관을 들어서면 ‘오솔길’ 양편으로 각각 두어평 남짓하게 오죽(烏竹)을 심어 놓은 곳이다. 땅이 척박해서인지 오죽도 활착을 하지 못하고 오란을 심어도 제대로 자라지 않아 늘 썰렁했다. 보다 못한 직원들이 지난해 봄에 들꽃 모종을 갖추갖추 구해다 꽃밭을 만들었다. 꽃밭. 그날 참으로 오랜만에 이 사랑스러운 낱말을 현실로서 생활에 들여 놓은 기꺼움에 젖었다.

처음 모종을 심었을 때는 기름지지 못한 땅이어서 걱정했는데 낯가림도 하지 않고 제 때에 맞게 꽃을 피워낸다. 놀라운 것은 이 조그마한 화단에 실로 많은 꽃들이 피고 지며 계절마다 새로운 힘을 얻게 한다는 사실이다. 봄에는 양광을 받아 기쁨처럼, 반가운 선물처럼 가슴에 안겨오는 하얀 꽃송이의 누운 애기별이며 은초롱 등이 나른한 봄을 이기게 하더니. 여름에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개미자리며 애기땅빈대 그리고 망초꽃이 더위를 잊게 한다.

이제 곧 쑥부쟁이며 꽃향유 그리고 꽃모양이 잔을 엎어 놓은 것 같아서인지 아니면 잠만 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지 알 수 없는 ‘잔대’가 가을을 알리며 수줍은 듯 꽃망울을 열 것이다. 그러면 또 아가의 손을 잡은 젊은 엄마들이 무거운 책을 한 아름 가슴에 안고 멈춰 서서 “어머나 이거 무슨 꽃이죠”, “이름이 뭐예요?”하고 물어오겠지. 나는 상장을 들고 온 딸아이의 이름을 알려 주듯이 신이 나서 친절하게 그 이름들을 가르쳐줄 것이다.

사막처럼 건조한 우리 도시인들의 가슴 마다마다에. 촉촉한 물기와 반짝이는 햇빛과 고마운 바람을 느끼게하는 이 자그마한 꽃들. 그들은 원래 사람을 위해서 피는 것은 아닐 게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 번성케 하려고 연연세세 생명을 뿜어낼 뿐, 인간에게 이토록 큰 혜택을 베푼다는 것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더욱 고맙고 거룩하게까지 한 창조주의 섭리를 발견한다. 태양이 떠오를 때 생기 있고 햇빛이 찬란할 때 눈부시고 저녁노을 아래 더욱 애잔하고 다소곳한 꽃들의 합창 혹은 축제.
이 작은 꽃밭에서. 보되 보이지 않던 나의 눈, 듣되 들리지 않던 나의 귀. 그토록 무딘 오관이 활짝 열려 이제야 제대로 된. 아니 부자(富者)스러운 인간으로 성숙되는 나를 발견한다.

경남신문 2006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