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애들아 책과 놀자
한겨레 2006년 10월25일 수요일
그때 우리는 경주 보문단지의 벚나무 단풍길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아이구야’손뼉을 치시더니 곧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서 붉은 잎 하나를 주워 드셨다. 한지에 먹물이 스민 듯 정말 부드럽게 물든 단풍이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 눈에 고와 보인 것은 단풍이 아니라 그것을 좋아하하는 77세 흰머리 소녀였다. 여기 삽화를 그리는 희록이는 다소 흥분하기 까지 했다.
“엄마, 엄마, 할머니가 감수성이 활짝 열리신 거 같아요. 전에는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빨리 문 닫아라. 파리 들어온다’ 그러셨거든. 근데 요즘은 팔을 벌리고 서 계셔요. 제가 품에 쏙 들어가면 안아 등을 두드려 주세요. 내가 아기 때 할머니가 그렇게 해주신 기억이 나요. 할머니가 어떻게 해서 다시 이렇게 되신 걸까? 신기해...”
그러나 신기해할 것 전혀 없다. 그게 바로 독서의 힘이다. 이 지면에 소개했던바 소설<한갈>에 이어 어머니는 소설<아리랑> 12권을 독파하셨다. 경주 여행은 아리랑 12고개를 무사히 넘으신 책거리 기념행사였다. 어머니의 변화는 그날 저녁 경주에서 나의 선배 부부와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책거리 행사답게 가볍게 맥주로 건배를 한 뒤 자신들도 못다 읽은 그 책을 다 읽으시고 대단하다는 인사를 받으신 어머니는 “내가 하는 일이 없잖아요. 그런데...” 하시더니 아리랑에 대한 소감을 줄줄이 이야기하시는 게 아닌가. 간간이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모해 길게 뜸을 들이실망정 말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내가 아는 어머니는 식당에서 식사에만 전념하시는 분이었다. 다들 이야기를 섞는데 음식에만 관심을 두고 계신 어머니는 아무래도 민망했다. 나중에 왜 말 없이 밥만 드셨냐고 불평을 하면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냐?”고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시곤 했다. 침묵의 압권은 금강산 관광이었다. 평생의 한으로 맺힌 38선을 넘어갔다 오시도록 큰 선물을 했다고 자부했는데 어머니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뿐이셨다.
그랬던 어머니가 이제는 할 말이, 하고 싶은 말이 생겨났으니, 당신이 발로 걸었던 그 땅을 책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봄으로써 ‘아, 저기가 거기구나’라는, 잊고 있던 당시의 생활과 희로애락의 감정이 올록볼록 실감나게 되살아난 까닭이다. 책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오르고 책을 따라 12고개를 넘는 사이, 어머니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낡아 해지고 끊어졌던 감수성의 그물망이 짱짱해지기에 이른 것이다. 침묵의 금강산은 그물이 뚫어져 고기를 잡을 수 없었던 탓이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보되 느끼지 못하고, 함께 있으나 나누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감소성이 그 만큼 둔해진 탓이리라. 책이 감수성을 벼리는 숫돌이 될 수 있음을, 나는 올가을 벚나무 단풍 아래 흰머리 소녀에게 서 보았다.